기획의 글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2차 세계대전 때 태어난 유대인으로 고국을 떠나 도시들을 끊임없이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는 『다수를 위한 찬가』에 수록된 <타인의 아름다움에서>에서 억압과 고독은 타인으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찬미한다.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중독, 용기 부족, 자살과 같은 극단적 행동은 마음이 발달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이다. 그 마음의 감정이 열등감이라고 할 때 노동, 사랑 그리고 공동체(관계)에서 열등감을 해소할 수 있으며 그것들의 행위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아담 자가예프스키(Adam Zagajewski),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중에서


한때 ‘너와 우리’라는 카테고리에 없던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매체의 확산으로 다문화와 혼혈가정과 같은 낯선 공동체를 인지하고, 1인 가구 증가로 동식물처럼 비인간에 속하는 것을 인격화한다. 《어쩌면 우리가 보지 않았던 것들》에서는 자기 인식의 발현 계기를 ‘타자와 관계맺기’로 정의하면서, 우리가 보려고 하지 않았던 타자와의 연결고리를 다층적으로 포착하고자 한다. 우리는 전체에 존재하는 일부이다. 이번 전시로 자라나는 세대들의 자아가 이로운 공동체 감정으로 올곧아지며 기꺼이 타자에게 질문하려는 마음이 샘솟기를 기대해 본다. 정수정은 회화와 드로잉을 통해 자연, 동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그린다. 작가는 돌고래들의 떼죽음, 꿀벌들의 실종과 같은 불가사의한 자연현상에 관한 기록들에서 영감을 받아 생명력 있는 장면을 구상한다. <햇볕, 달 그리고 복숭아뼈>(2019)는 세로 18cm의 자투리 캔버스 천을 이어 붙여 제작한 작품으로 생태계가 타의로 파괴되고 구축되는 현실을 비유하고 있다. 파노라마 형식의 작업은 지구가 겪은 시간과 흔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의 소멸을 상징하는 광경들을 가장 우측에 보여준다. (2021)와 (2021)에는 무리 지어 날아오르고 헤엄치는 동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의 형상으로부터 타자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인류는 문명과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자연 체계에 분란을 일으켰고 자연은 이에 순응해온 듯하다. 그러나 미래의 자연은 예측할 수 없기에 작가는 공존하기 위한 생태 순환의 형태에 주목하며 인류가 만든 시스템을 진단하게 한다. 최원준은 문화, 경제, 정치 등의 사회구조가 개인과 집단에게 주는 영향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다. 최근 작가는 아프리카 노동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본인의 거처를 옮겨 파주, 동두천, 송탄 등에서 작업했다. 그는 아프리카 이주민들의 생활방식과 우리와의 관계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며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촉구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당시 우리나라의 인력난은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고,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을 허용하여 이를 해소한 바 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에티오피아인 등의 아프리카인들은 한국에서 자신의 공동체를 굳건히 유지해 오고 있다. 그들의 문화적 결속에서도 작가는 또 다른 현상들을 포착하는데, <나이지리아에서 온 넬슨과 엠마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1) 가족사진에서 세대 간의 화합과 다문화 가정의 갈등을 동시에 살피는 한편, 공장 노동자들의 단체사진을 촬영하여 경제성장으로 변화하는 국내외 노동시장의 현주소를 드러내고 있다. 1995Hz는 광주·전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 단체이며, 이번 작업은 독립큐레이터 김소진, 김규리와 시각예술인 이대로, 임수범, 손유진의 참여로 이뤄졌다. 이들은 광주를 중심으로 특정 장소, 역사적 사건, 자연 등에 내재된 지역성에 대해 발언한다. 이번 전시에서 1995Hz는 광주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무등산에 주목한다. 전남의 역사를 방증하는 무등산은 광주 시민들의 정서가 깊게 배인 장소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공동체의 흔적을 찾아내기 알맞다. 또한 산으로 향하는 개인의 경험과 공적 장소의 역사성이 맞물리는 작업 과정을 통해 지역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무등예찬-우리가 산으로 향하는 이유>(2023)는 무등산의 유물, 계곡, 수목 등을 담은 풍경화를 배경으로, 관객이 직접 올라갈 수 있는 평상 구조물을 설치한 작품이다. 임수범의 <새로운 세계의 시작(무등산)>(2022), 손유진의 <무등산수>(2022)의 부분을 차용하여 무등산의 이미지를 재생산했다. 작가 이대로는 아기등덩쿨총롱이끼, 쥐꼬리이끼 등 무등산에서 식생하는 이끼로 산의 경관을 부분 재현한다. 생태계의 터전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제공하는 이끼의 생리처럼 함께 사는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수연